조선시대에도 저작권 개념이 있었을까? – 목판본과 복제 논쟁

 


저작권은 흔히 근대 이후 생긴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조선시대에도 ‘지식의 소유’와 ‘복제 금지’에 대한 논쟁이 분명히 존재했다. 특히 출판과 인쇄 기술이 발달한 조선 후기에는 서책을 찍어내는 ‘목판본’ 시장이 활발했고, 이를 둘러싼 무단 복제와 도용 문제도 빈번했다. 이 글은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사적 지식 보호’의 흔적과, 그것이 어떻게 논의되고 규제되었는지를 살펴보며, 전근대 사회에서도 저작권적 사고가 존재했음을 밝힌다.

1. 조선 후기 출판 문화의 발전

조선 전기는 국가 주도의 관판본 위주였지만, 후기에는 사대부, 유생, 사찰, 상인 등 다양한 주체들이 **사설 출판**에 나서게 된다. 특히 **한문 소설**, **의서**, **유학 관련 서적**, **점술서** 등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며 대량 인쇄되었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출판업자도 등장했다. 이러한 책들은 ‘목판’을 통해 제작되었고, 인기 있는 서적은 **타 지역에서 판권 없이 복제**되어 유통되기도 했다.

2. 복제 피해와 지식인들의 반응

많은 유학자들은 자신의 저작이 무단으로 복제되어 판매되는 것을 **‘도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성호 이익은 제자의 서신을 통해 **자신의 글이 한양에서 무단으로 유통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는 글을 훔친 것이며, 도둑이 책 속에 깃든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일부 저자는 책의 서문에 **“이 책은 어느 고을의 누구가 펴낸 것이니, 무단 인출을 삼가라”**는 문구를 삽입하기도 했다.

3. 공식적인 ‘출판 소유권’ 개념은 있었을까?

조선에는 근대적 의미의 저작권법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역 유림** 또는 **문인 간 공동체 내 규범**으로 복제를 금지하는 사례는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출판권’이 특정 서원이나 문중에 귀속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고, 타인이 이를 어길 경우 **도의적으로 비난**받았다. 또한 **관아에 복제 금지를 요청하는 청원**을 넣은 사례도 실록과 지방문서에 등장한다.

4. 무단 복제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복제는 주로 **다른 고을의 서방(書房)이나 방각소(坊刻所)**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인기 있는 책을 입수한 뒤, 그대로 목판을 새기거나 일부 편집을 거쳐 다른 제목으로 유통했다. 또한 **한양에서 출간된 소설책이 전라도, 경상도에서 복제되어 팔리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점술서, 효험서, 민간요법 등은 수요가 높아, **복제의 온상이 되었다**.

5. 조선의 ‘지식 소유권’ 관념 정리

구분 내용 현대 저작권과의 차이
서문 경고문 “무단 인출을 삼가라” 표기 법적 구속력 없음, 관습적 경고
문중/서원 중심 출판권 가문의 글은 외부인이 복제 금지 지역 기반의 도의적 규제
관아 청원 복제 피해 시 관청에 진정 공적 처벌 근거 부족
비난 문화 복제자에 대한 문인 사회의 조롱 사회적 제재 중심

결론: 조선에도 ‘저작권 의식’은 존재했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처럼 법으로 보호되는 저작권 제도는 없었지만, 지식인의 세계에서는 분명히 **‘지식 소유’와 ‘창작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존재했다. 복제는 도덕적 위반으로 간주되었고, 지역 사회 내에서는 비공식적이나마 규제와 처벌이 이루어졌다. 이는 조선이 단지 형식적인 유교 국가가 아니라, **지식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보호를 고민했던 사회**였음을 보여준다. 이 글은 현대 저작권의 기원을 탐색하는 동시에, 조선 후기 문예 활동의 수준 높은 현실감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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