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 여성의 몰래 배우기 운동

 


일제강점기 하면 대부분 무단통치, 독립운동, 수탈 등을 떠올리지만, 그 이면에는 조선 여성들이 주도한 작고 은밀한 저항이 존재했다. 바로 ‘몰래 배우기 운동’이다. 당시 여성의 교육 기회는 극도로 제한되었고, 특히 조선 여성은 가정 내 역할에만 묶여 있어 글을 배우거나 지식을 쌓는 것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성들은 조직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문해(文解) 능력을 키우기 위한 학습 모임을 형성했고, 이는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문화적 저항으로 기능했다. 이 글은 일제강점기 조선 여성들이 어떻게 억압 속에서 배우고, 기록하고, 연대했는지를 조명한다.

1. 일제의 여성 교육 통제 정책

1910년대 조선총독부는 여성 교육에 대해 ‘가정 중심의 순종적 역할’만을 강조했다. 보통학교령여자고등보통학교령을 통해 여학생의 교육을 제한했으며, 여성은 ‘부덕(婦德)’ 중심의 교육만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의 문자 해득조차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억압은 여성 교육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했고, 결과적으로 비공식 학습 네트워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2. 몰래 배우기 운동의 실태

몰래 배우기 운동은 특정한 이름을 가진 조직은 아니었지만, 다음과 같은 형태로 은밀하게 전개되었다:

  • 사립 야학 – 여교사 또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중심이 되어, 밤에 여성만 모아 한글, 산수 등을 교육
  • 교회 기반 교육 – 기독교 선교사를 통해 글을 배운 여성들이 주변에 지식을 나눠주는 형태
  • 부엌 글공부 – 식사 준비 후, 부엌 뒤켠에서 ‘여성용 한글 소책자’를 보며 자습
  • 구술 암기법 – 글을 읽지 못하는 여성에게 내용을 입으로 반복해서 전달, 집단 기억 방식

이러한 학습은 종종 ‘교육이 금지된 여성’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확산되었으며, 장소는 대부분 개인 주택, 교회 지하, 절간 창고, 또는 시장 상점의 뒷방 같은 **비공식 공간**이었다.

3. 대표 사례: 광주의 여성 야학 ‘정명회’

1930년대 광주에서는 여성 교사들이 주도한 ‘정명회’라는 비공식 교육 모임이 있었다. 이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재봉 기술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모임을 유지했고, 실제로는 여성들에게 한글과 숫자, 노동법 기초 등을 가르쳤다. 정명회는 광주 지역 시장 상인, 부녀자, 심지어 기생 출신 여성들까지 수용했으며, 일제 말기까지 비밀리에 유지되었다. 이 모임은 광복 이후 광주 여성 노동조합 결성에 중요한 인적 기반이 되었다.

4. 몰래 배우기 운동이 사회에 끼친 영향

몰래 배우기 운동은 단지 글을 배우는 행위에 그치지 않았다. 이는 여성의 **의식 성장**, **사회 참여**, **민족 정체성 각성**으로 이어지는 촉매제였다. 특히 이 운동을 통해 교육을 받은 여성들 중 일부는 이후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해방 이후 여성 교육의 주체로 성장**했다. 또한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사회에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5. 몰래 배우기 운동 방식 정리

운동 형태 주체 교육 내용 장소 특징
야학 여성 교사, 여운형계 독립운동가 한글, 산수, 노동 상식 가정집, 교회 지하 심야 운영, 단속 위험
부엌 공부 주부, 가사노동자 여성용 소책자 부엌, 광, 장독대 뒤 혼자 공부, 구술 전파
선교사 교육 기독교 여선교사 한글 성경, 기초 문해 교회, 병원 기독교 전도 병행
기술학원 위장 재봉사, 한의사 부인 등 실용 기술+한글 시장, 공방, 객주 표면은 기술교육, 실제는 문해교육

결론: 조선 여성의 몰래 공부는 ‘지식의 독립운동’이었다

몰래 배우기 운동은 칼이나 총을 들지 않았지만, 그만큼 치열하고 절실한 저항이었다. 지식은 힘이고, 여성들에게 그 힘을 안겨준 것이 바로 이 작고 조용한 학습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교육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한 세기 전만 해도 ‘여성이 글을 안다는 것’ 자체가 혁명이었다. 이 글은 조선 여성들이 만들어낸 **일제강점기 아래의 지식 네트워크**를 조명함으로써, 역사의 또 다른 주역들을 다시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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