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도 ‘브로커’가 있었다? 시험, 혼인, 군역의 어두운 그림자

 


‘브로커’라는 단어는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맥락에서 쓰인다. 부동산 중개인에서부터 불법 취업斡旋, 입시 비리, 병역 면탈까지. 공식 절차 뒤에서 비공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들을 우리는 ‘브로커’라 부른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현대만의 문제일까? 조선시대에도 제도화된 시스템과 현실의 간극을 파고든 **‘비공식 중개인’**, 즉 당시식 ‘브로커’가 존재했다. 이들은 과거 시험, 혼인, 군역 면제 등 민감한 영역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며 부를 축적했고, 동시에 사회 불평등과 부패를 심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했다. 이 글은 조선시대의 브로커 현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발생한 권력 이면을 조명하고자 한다.

1. 과거 시험의 음지: ‘답안 유통 브로커’

조선의 과거 시험은 공식적으로는 공정한 시험제도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문제 유출**, **모범 답안 유통**, **채점관 접촉** 등 다양한 비리 행위가 존재했다. 일부 서원이나 향교에서는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에게 **고위 관리 출신의 '비선 교사'**를 붙여주며, 미리 출제 경향이나 채점 기준을 유출해 주는 대가로 **쌀, 돈, 가축** 등의 보수를 받았다. 특히 **사족(士族)** 집안의 자제가 급제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연결해주는 인물이 지역 곳곳에 존재했으며, 이들은 사실상 **과거 브로커**로 기능했다.

2. 혼인 시장의 ‘중매상’과 신분 세탁 브로커

조선의 혼인은 단순히 개인의 일이 아니었다. 혼인을 통해 **가문 간의 정치적·경제적 동맹**이 형성되었고, 이는 계급 유지의 수단으로 작용했다. 이 구조 속에서 **신분 세탁**, **가짜 족보 제작**, **위장 결혼 중개** 등의 활동이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일부 중매인들은 단순한 결혼 소개를 넘어서, **양반 가문과 중인 또는 서얼 여성**의 결혼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작 서비스를 제공했고, 심지어 **죽은 양반의 족보를 사서 이름을 끼워넣는 ‘입보(入譜)’ 거래**도 존재했다. 이런 활동은 오늘날의 결혼 브로커와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3. 군역 회피를 위한 ‘면역 브로커’

조선 후기, 국가 재정이 악화되고 병역제도가 문란해지면서 군역 회피를 위한 다양한 방법이 성행했다. 특히 **대신 군역을 서 줄 대가로 돈을 받는 ‘대립(代立)’ 제도**가 확산되었는데, 이를 알선하는 **중개인**, 즉 ‘면역 브로커’가 존재했다. 이들은 군역 대상자와 대리인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며, 지방 수령이나 향리와 결탁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는 **장애인 증명서 위조**, **유배자 신분 도용** 등을 통해 아예 군역 자체를 면제받게 해주는 고급 브로커로 발전하기도 했다.

4. 조선 시대 브로커의 주요 활동 유형 정리

브로커 유형 활동 영역 운영 방식 대가
과거 브로커 과거 시험 모범답안 제공, 채점관 연결 쌀, 현금, 가축 등
혼인 브로커 결혼, 신분 상승 가짜 족보 제작, 위장결혼 중개 은, 현금, 토지 일부
군역 브로커 군역 회피 대립자 연결, 장애 증명 위조 현금, 뇌물
입보 브로커 양반 입보 가문 족보 매매, 혈통 조작 현금, 부동산 일부

결론: 제도와 현실의 틈을 파고든 조선의 브로커들

조선은 유교적 도덕과 신분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였지만, 그 내부에서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비공식 권력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과거 시험의 비리, 신분 상승을 위한 족보 조작, 군역 회피 등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균열을 보여주는 증거**다. 조선의 브로커들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제도에 접근할 수 없는 이들의 유일한 ‘출구’ 역할도 했으며, 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조선 사회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역동적인 질서를 가졌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브로커 문제도, 결국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준다.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