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기 ‘국가기록 삭제’의 진짜 이유 – 문서 파기의 역사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다. 그러나 기록이 남는다는 건, 곧 **책임과 증거도 함께 남는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특히 군사정권 시기(1961~1987)는 수많은 정책과 사건이 **“문서 없음”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다.** 이 글은 **국가기록 삭제라는 행위가 단순한 실수가 아닌, 권력 유지 전략이자 정치적 선택**이었다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와 구조 중심으로 분석한다.

1. 삭제된 기록은 어떤 것들이었나?

삭제 시기 삭제 주체 삭제된 문서 유형 의심되는 이유
1961~1979 (박정희 정권) 중앙정보부, 국방부, 청와대 민간인 사찰 보고서, 긴급조치 처리기록 인권 탄압 증거 은폐
1980~1987 (전두환 정권) 국가안전기획부, 청와대 비서실 5.18 당시 군 배치 기록, 계엄 명령 문서 군사 쿠데타 정당성 조작
1987 이후 정권 이양기 내무부, 법무부 고문 조서 원본, 조작 간첩 사건 문서 정권 연루 사실 은폐

2. 왜 기록을 지웠는가?

기록 삭제는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 **정확한 목적을 가진 정치 행위**였다. 그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불법 행위 은폐 – 고문, 사찰, 조작 수사 등 헌법 위반 행위 증거 제거
  • 정권 정당화 – 쿠데타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사전 문서 왜곡 또는 파기
  • 책임 전가 회피 – 명령 체계를 지우고 하위자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한 사전 정리
  • 사회 혼란 방지 명분 – “기록 보존이 더 큰 갈등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파기 결정

3. 기록 삭제의 실행 방식

기록 삭제는 행정적 실수나 자연 소멸이 아니었다. **철저한 계획, 내부 승인, 보안 처리**를 통해 진행됐다. 구체적 방식은 다음과 같다:

  • 1차 분류 – 기관 내 ‘보안 담당자’가 삭제 대상 문서를 리스트업
  • 2차 승인 – 기관장 또는 최고위층의 구두 승인 (서면 지시 없음)
  • 3차 폐기 – 파쇄 또는 소각, 일부는 ‘보관기한 만료’ 명목으로 문서이관 없이 소멸
  • 4차 정리 – 남은 보고 체계도 삭제, 관련자 인사이동

실제로 5.18 당시 광주 지역 계엄군 부대의 **통신 및 보고 문서 상당수가 ‘파기처리’로 등록조차 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4. 국가기록원이 추적한 잔존 기록 수치

아래는 2020년 기준 국가기록원이 공식 추적한 **‘기록 부재 문서’의 주요 수치**다.

문서 유형 총 생산 추정량 현재 보관량 소실/삭제 추정량
5.18 당시 작전 일지 약 9,800건 1,220건 8,580건
긴급조치 집행 기록 약 6,400건 870건 5,530건
중앙정보부 민간인 감시 문서 약 14,000건 3,200건 10,800건

이 수치는 단순한 보관 실패가 아니라, **의도적 소각 및 미등록 처리가 조직적으로 실행되었음을 의미**한다.

5. 기록 삭제가 남긴 후유증

  • 과거사 재조사의 한계 – 증거 부족으로 진상 규명 지연
  • 국민 신뢰 저하 – 정부 공식 기록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문화 형성
  • 피해자 권리 박탈 – 고문, 조작 수사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 불가

이러한 후유증은 단순히 ‘문서가 없다’는 사실을 넘어서, **국민과 국가 간의 관계 자체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론: 기록은 권력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문서 파기는 권력자들에게는 순간의 안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에 남는 것은 결국 **남은 문서와, 사라진 문서의 흔적**이다. 군사정권 시기의 기록 삭제는 **‘기억을 통제하려는 폭력’**이었으며, 그 기록을 복원하고 추적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국가를 감시하는 시민으로서 해야 할 책무**다. 이 글은 ‘없어진 기록’을 통해 **사라진 진실과 맞서는 방법을 제시하는 역사적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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